Byzantine Byzantium

제목: 비잔틴적인 비잔티움

From Life Itself. 저자: 수지 핸슨(Suzy Hansen). Farrar, Straus and Giroux 출판사; 368쪽; 30달러. Profile 출판사; 12.99파운드.

이스탄불에서는 땅을 조금만 파도 역사가 나온다. 보스포루스 해협 아래 터널을 건설하던 중, 엔지니어들은 약 1,500년 전의 난파선들과 함께 고대 항구의 유적을 발견했다. 해협 건너편, 1906년에 지어진 하이다르파샤 기차역 보수 공사 중에는 승강장과 선로가 기원전 7세기에 세워진 그리스 정착지 칼케돈의 유적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스인부터 제노바인, 오스만인에 이르기까지, 이스탄불(구 콘스탄티노플)은 수많은 새로운 이주민들의 흔적이 깊게 새겨진 곳이다. 인구가 약 100만 명이었던 1950년에서 온 시간 여행자라면 오늘날의 이스탄불은 거의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이스탄불은 수많은 신규 주택 및 인프라 프로젝트와 약 1,6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유럽 최대 도시가 되었으며, 이는 대부분의 EU 국가 인구보다도 많은 수치다. 한때 이스탄불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했던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유대인들은 이제 극히 일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자리에는 쿠르드족을 포함한 아나톨리아 출신의 이주민들이, 그리고 최근에는 중동 출신의 난민들이 들어왔다.

한때 이스탄불 시장이었고 현재는 터키 대통령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치하에서 이루어진 이 도시의 최근 변화를 저널리스트 수지 핸슨이 자신의 새 책에서 다룬다. 그녀는 카라귐뤼크(Karagumruk)라는 한 동네를 통해 이주, 도시 개발, 권위주의에 관한 더 큰 이야기를 풀어낸다. "낮에 터키에서 본 것은 헤드라인들이었고, 밤에 카라귐뤼크에서 본 것은 정보, 즉 삶 그 자체였다"라고 그녀는 쓴다.

2010년대 초, 터키 남부 국경 건너 시리아에서 발발한 전쟁과 그에 따른 난민 위기로 인해 약 400만 명의 시리아인이 터키로 몰려들었다. 그들 중 다수는 카라귐뤼크 같은 동네에 정착해 좁은 아파트에 다른 시리아 가족들과 함께 몸을 웅크리고 살며, 봉제 공장 노동자나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핸슨은 책의 상당 부분을 이 도시의 비잔틴 성벽 안에 자리 잡은, 보수적이고 다소 허름한 이 동네의 카페와 이발소에서 조용히 관찰하며 보낸다. 그녀는 세속주의자와 보수주의자, 그리고 원주민과 신규 이주민 사이에 벌어지는 카라귐뤼크의 문화 전쟁을 기록하는 사람이 된다. 미식, 음악, 심지어 청결 기준까지도 전쟁터가 된다. (터키인들은 결벽증이 있기로 유명하다.)

문화적 차이도 갈등의 한 원인이지만, 경제적 불안, 포퓰리즘적 공포 조장, 그리고 이스탄불의 급격하고 통제되지 않은 성장 또한 마찬가지다. 시리아 청소년들과 터키 청소년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자, 핸슨은 그 이유를 찾아 나선다. 쉬운 답은 없다. 그렇다, 한 지역 상점 주인이 그녀에게 말하길, 인종차별이 그 폭력 사태에 한몫했다. 하지만 이 동네의 사회적 구조와 한때 이스탄불을 그토록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던 신뢰의 붕괴 또한 그만큼 큰 원인이었다.

정치적 폭력과 가중되는 억압 또한 이 동네에 흔적을 남긴다. 2016년, 에르도안에 대한 유혈 쿠데타 시도 이후 대규모 체포 사태가 벌어지면서 반대의 목소리를 낼 공간은 좁아지고 불신이 퍼진다. 이웃들이 서로를 밀고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터키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은 대체로 흔들림 없이 유지된다. 에르도안 치하에서 일인 독재로의 전락은 급격한 추락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된 쇠퇴였다. "터키에서의 권위주의는 단순히 독재자가 국가를 장악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핸슨은 쓴다. "그것은 하나의 창조 행위였으며, 아무도 지켜보지 않을 때 시작되어 일단 정체가 드러났을 때는 이미 멈추기에 너무 늦어버린 변형의 과정이었다."

우크라이나부터 이란까지 터키 문앞에서 벌어지는 전쟁들과 러시아와의 확전 가능성은 터키에 대한 논평의 상당 부분을 터키의 커지는 지역적 영향력과 나토(NATO)에서의 중요한 역할로 쏠리게 만들었다. 반면 국내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덜 주목받는다. 에르도안은 자신의 독재적 폭주에 대한 외부의 감시를 피하고 싶어 하기에, 이런 상황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카라귐뤼크를 통해 핸슨은 그가 만든 터키를 들여다볼 창을 제공한다. 이 책만큼 그 실상을 잘 포착해낸 영어권 저서는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