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XINGTON

렉싱턴
그의 왕국이 도래하다

J.D. 밴스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는다면, 트럼프주의보다 더 급진적인 정치의 후계자이다.

1980년대 당시 미국의 통념은 로널드 레이건 하에서 미국이 우경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레이건의 임기가 끝날 무렵 뷰캐넌이 바라본 미국은 달랐다. 레이건과 리처드 닉슨 밑에서 일했던 공화당의 충신 패트릭 뷰캐넌은 1988년에 출간한 자서전 ‘처음부터 옳게(Right from the Beginning)’에서, 한때 기독교 국가였던 미국이 자신이 가톨릭 신자로 자라면서 배운 유대-기독교적 가치를 저버렸다고 한탄했다.

그의 비판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뷰캐넌은 "이단자를 처벌하고 정통성을 단속하는 그들만의 방식"을 가진 세속적 좌파 운동이 인종차별, 성차별, 환경 파괴라는 인식에 집착하고, 사회주의를 퍼뜨리며, 언론을 검열하고, 젊은 미국인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경멸하도록 가르침으로써 자신들의 가치를 강요하고 있다고 썼다. 뷰캐넌은 아시아 제품을 제한하기 위한 "터무니없는 ‘무역 전쟁’"을 "서구에 있어 거의 치명적인 어리석음"이라며 비난했다. 역시 공화당원이자 가톨릭 신자였던 편집자 윌리엄 F. 버클리의 뒤를 이어, 뷰캐넌은 자유 무역을 소련과의 투쟁에서 미국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92년과 199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반란적인 선거 캠페인을 벌였을 때, 뷰캐넌은 자신의 문화적 보수주의에 경제적 포퓰리즘을 가미했다. 그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미국 노동자를 배신한 것으로 비난했고 일본과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촉구했다. 그는 이제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한 "보안 장벽"을 포함한, 이른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고립주의적 외교 정책을 홍보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법을 어기고, 우리 나라에 침입해 복지를 누릴 권리가 없다"고 그는 호통쳤다.

이 역사는 미국의 변화무쌍한 부통령 J.D. 밴스의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변신들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도널드 트럼프를 헤로인에 비유했던 밴스는 상원의원 출마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 전 그가 ‘빛을 보았을 때(개종했을 때)’ 기회주의자라는 의심을 받았다. 그의 정치적 전향은 그 무렵 그가 겪었던 가톨릭으로의 종교적 개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더 이해가 된다. 2015년 황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온 이후, 트럼프는 뷰캐넌주의를 재탕한 버전으로 캠페인을 벌여왔는데, 이는 그 자체로 양차 세계대전 사이 우익 가톨릭 정치의 부활이다.

밴스의 최근 저서 ‘교감(Communion)’에서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결론은 그가 트럼프보다는 뷰캐넌의 후계자라는 점이다. 이것이 그를 사회의 완전한 변혁을 꾀하는 진정한 급진주의자로 만든다. 언제나 실용주의자인 트럼프는 밴스를 매료시키고 뷰캐넌을 이끌었던 거대한 이념에는 관심이 없다. 트럼프는 관세와 장벽을 믿지만, 그의 고립주의 정치는 세계적으로 힘을 투사하려는 그의 열망과 맞지 않았으며, 유대-기독교적 가치에 대한 그의 헌신 또한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처럼 묘사한 이미지를 게시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트럼프가 밴스나 뷰캐넌처럼 1891년 교황 회칙인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을 인용하며 더 높은 임금과 노조 결성을 주장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밴스는 또한 공화당과 보수 기독교의 결합이 공장 일자리보다 낮은 세금을 우선시한다고 비난할 때, 혹은 양당 모두가 "우리 문명의 기독교적 유산을 저버리고 있다"고 비난할 때, 또는 "상업의 제단에서의 숭배"(그 제단에는 트럼프 로고가 찍혀 있지 않은가?)를 한탄할 때 트럼프보다는 뷰캐넌에 훨씬 더 가깝게 들린다. 트럼프는 자신이 이미 황금시대를 열었다고 말한다. 41세의 밴스는 자신을 자유주의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한 긴 투쟁을 이끄는 인물로 설정한다.

하지만 뷰캐넌과 달리 밴스는 그 말들을 진심으로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가 큰 질문들에 대해 답을 바꾼 횟수를 고려하면, 그는 자신이 또다시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이상할 정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반(反)트럼프주의자든 트럼프주의자든, 무신론자든 신자든, 출세를 지향하는 엘리트든 엘리트의 저승사자든, 밴스는 결코 의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J.D. 밴스에 관한 한, J.D. 밴스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그가 어떤 이념에 헌신하는지 추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는 공화당원들이 권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 "정말 무자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으며, ‘교감’에서는 정치가 "타협하고 공적 서사를 형성해야 하는" "더러운 사업"이라고 썼다. 그가 언급하는 것은 오하이오의 아이티인들이 이웃의 반려동물을 잡아먹고 있다는 주장과 같은 이민자들에 대한 악의적인 지어낸 이야기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에 대한 서사를 말하는 것인가? 어떤 서사가 신념이 아닌 무자비함의 증거인가?

신정정치로부터 미국이 몰락했다는 그의 설명은 확실히 설득력이 없다. 미국의 건국 250주년을 맞아 공적 영역에서의 신앙을 다룬 책치고는 이상하게도, 이 부통령은 정부 내 종교의 역할에 관한 미국의 건국 이념을 논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현대 미국 정치에서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유행이 지났다"와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며, 과거 존 F. 케네디가 취임사에서 "신을 세 번 언급했다"고 지적한다. 이 자랑스러운 밀레니얼 세대 부통령은 구글 검색하는 법을 모르는 것일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취임사에서 신을 네 번 언급했다는 사실을 찾아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슬픔에 잠긴 회중 앞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불렀던 때를 잊은 것일까? 이는 트럼프나 밴스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단순하고 가슴 뭉클한 신앙의 공적 행위였다.

뷰캐넌 시대 이후로 바뀐 것들도 있다. 그는 대법원을 "탈환"하지 않고는 그 어떤 "보수적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고 믿었다. 가톨릭 신자인 레너드 리오가 이끄는 보수적인 ‘연방주의자 협회(Federalist Society)’는 그 이후 보수적이고 가톨릭적인 대법원 다수파를 구성하는 데 기여했다. 부통령이 뷰캐넌이나 그 이전의 버클리와 같은 종류의 우려로 안달복달하고 있다는 사실에 미국인들은 어쩌면 위안을 얻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치는 항상 그런 것이고, 공화국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미국의 문제에 독선적인 허풍쟁이들이 부족한 것은 확실히 포함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