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NVITATION

기고
피터 콘티-브라운

연준 의장은 정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앨런 그린스펀이 했던 방식은 아니다.

1990년대는 어떤 시기였나? 한편으로는 '프렌즈', '심슨 가족', '사인필드'로 대변되는 냉소적인 유머, 시애틀 그런지 록의 불안감, 그리고 스캔들로 얼룩진 백악관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치솟는 주식 시장, 인터넷 붐, 1920년대 이후 처음으로 지속된 연방 재정 흑자가 있었다. 이러한 모순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커트 코베인도, 제리 사인필드도, 빌 클린턴도 아니었다. 바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이었다.

향년 100세로 세상을 떠난 그린스펀은 역사가들이 수십 년 동안 분석할 만큼 복잡한 유산을 남겼다. 그는 낮은 인플레이션, 높은 성장률, 그리고 냉전 이후 세계에서 미국의 경제적 강점이라는 번영을 이끄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그는 금융 시장이 연준의 구제금융을 당연시하도록 방치하여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게 만드는 등 금융 시장을 규율하는 데는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그 유산은 익숙하다. 하지만 또 다른 유산은 그 뒤를 이어야 할 중앙은행 총재들에게 초대장이자 경고로서 똑같이 중요하다. 단순한 경제 전망가나 중앙은행 총재, 강경한 자유지상주의자를 넘어, 그린스펀은 정치인이었다. 그는 정치적 난관 속에서 연준을 이끄는 기술을 터득했다. 동시에 그는 연준이 관여해서는 안 될 소용돌이 속으로 연준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첫 번째 교훈은 용기다. 1987년 취임한 그린스펀은 전임자인 폴 볼커가 쌓아 올린 강점을 토대로 기반을 다졌다. 그는 곧 적을 만들었다. 로널드 레이건의 유력한 후계자이자 부통령이었던 조지 H.W. 부시였다. 1988년 대선 캠페인이 본격화되자, 그린스펀의 연준은 과열과 인플레이션 재발을 우려해 금리를 인상했다. 부시는 이를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다.

부시는 1988년 선거에서 쉽게 승리했고, 곧 기록적인 대통령 지지율을 달성했다. 그러나 경기가 둔화되자 무적이라 여겨졌던 대통령에게서 약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1991년, 걸프전 종전 무렵 지지율이 정점에 달했을 때 부시는 "당장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린스펀은 굴복하지 않았다. 연준은 금리를 인하했지만 점진적으로 진행했으며, 이는 1992년 대선 해까지 이어졌다. 부시는 나중에 자신의 패배 원인을 연준 탓으로 돌렸다. 아마 그의 말이 맞았을 것이다.

빌 클린턴이 취임할 무렵, 정치적 주도권은 그린스펀이 쥐고 있었다. 1995년 백악관 비서실장이 고금리를 이유로 연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클린턴의 경제 수석 보좌관인 로버트 루빈은 그를 질책하며 새로운 원칙을 세웠다. 행정부 내 누구도 다시는 연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교훈은 클린턴 행정부 당시 루빈의 가장 가까운 경제 협력자 중 한 명이었던 앨런 그린스펀과의 주간 회의를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그린스펀의 후임자들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연준 의장이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는 독립적인 통화 정책의 특권을 지키는 것이다. 연준이 항상 옳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은 자신들에게 유효한 단기적인 기간에 이익이 되는 더 쉬운 돈을 선호하는 편향을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의 독립성이란 곧 그러한 근시안적 태도에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건은 연준 의장이 그린스펀처럼 독립성을 방어할 용기를 가지고 있느냐이다.

그린스펀이 행사한 권력에는 어두운 면도 있었다. 그는 통화 정책과 별 상관없는 논쟁에 반복적으로 개입했다. 2001년,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막대한 감세 정책 추진에 동참했다. 이러한 감세는 국가 부채를 수조 달러 늘리고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려는 초당적 합의를 사실상 끝장냈다. 그린스펀은 나중에 자신의 열의가 실수였음을 인정했지만, 이미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뒤였다. 조지 W. 부시가 미국 재정 운명의 변화를 불러왔다면, 그린스펀은 그 산파 역할을 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두 번째 부시 행정부 시절, 그는 사회보장제도 민영화 노력을 지지했다. 개혁은 그가 연준에 합류하기 전부터 엄청난 시간을 할애했던 주제였으며, 그는 현대적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한 위원회를 이끌기도 했다. 그리고 정책적 직관이라는 측면에서 그린스펀의 판단은 옳았다. 당시나 지금이나 사회보장제도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은 위태로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직 연준 의장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었다. 자신의 권위를 당파적 의제에 빌려줌으로써 그린스펀은 자신과 연준의 명성을 훼손했다. 이러한 질문을 받았을 때 연준 의장이 할 수 있는 적절한 대답은 단순하다. "의회와 백악관의 소관인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없습니다."

오늘날 연준은 케빈 워시가 이끌고 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통화 정책에서 정치를 배제하고, 정치에서 통화 정책을 배제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훌륭하지만 희망 사항일 뿐이다. 중앙은행은 중앙은행에 목적과 책무를 부여하는 정치 시스템으로부터 완벽하게 단절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문제는 연준이 정책에서 정치를 제거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연준이 어떤 정치를 펼쳐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성공과 과오를 통해 그 로드맵을 제시한다. 연준 의장은 단기적인 당파적 전략에 따라 통화 정책을 좌지우지하려는 압력에 맞서는 제도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에 대한 공세는 그 맹렬함에 있어 유례가 없다. 하지만 더 쉬운 돈을 원하는 그의 욕구는 연준만큼이나 오래된 대통령의 본능이다. 다음번 대통령의 행패를 기다릴 필요 없이 연준 의장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그는 연준을 방어해야 한다.

그러나 워시는 그린스펀처럼 뼛속까지 당파적인 인물이다. 그린스펀의 유산이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현직 의장은 이제 그러한 직관을 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칭찬도, 이런저런 당파적 프로그램에 대한 언급도 해서는 안 된다. 그의 행동 반경은 좁다. 이제부터 그의 정치적 과제는 단순하다.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연준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의 성공과 실패가 그의 유산을 규정할 것이다. 나머지는 각주에 불과하다.

피터 콘티-브라운은 와튼 스쿨의 금융 규제학 교수(Class of 1965 Associate Professor)이며, '연방준비제도의 권력과 독립성(The Power and Independence of the Federal Reserve)'과 출간 예정인 '연방준비제도: 미국 역사(The Federal Reserve: An American History)'의 저자이다.